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왕가박물관 소장 신라 금귀걸이 (문단 편집) == 내용 == 1909년에 [[대한제국]] 황실에서 [[창경원]]에 설립한 [[한반도]] 최초의 [[박물관]]인 이왕가박물관에서 전시했던 고신라시대 금귀걸이 유물이다. 정확히 언제부터 이 유물이 전시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1912년에 출판된 사진첩에 사진이 실려있는 고로, 박물관이 설립된 1910년부터 1912년 사이에 전시된 것은 확실하다. 이왕가박물관의 원래 명칭은 제실박물관으로, 1909년 창경궁 명정전 일원에 설립되어 11월 1일부터 일반에 공개되었다. [[일제강점기]]에 이왕가박물관으로 개칭되었으며, 1938년에 명칭이 이왕가미술관으로 바뀌었다가 해방 뒤에는 덕수궁미술관으로 존속, 최종적으로 1969년에 현 [[국립중앙박물관]]에 소장품이 통합되었다. 본 유물의 사진은 [[1912년]]에 발행된 『이왕가박물관 소장품 사진첩』(상ㆍ하 2권)에 수록된 것으로, 이 당시 이왕가박물관의 소장품 수는 총 12,230점이었다. 현재 [[대한민국의 국보|대한민국 국보]]로 지정되어 있는 [[경주 부부총 금귀걸이]]보다 10여년 더 이른 시기에 발견하여 박물관에 전시되었던 한국 최초의 누금 장식 금귀걸이 유물로, 비록 [[꽃]] 대신 [[새]]를 표현하는 등 누금 디자인의 상태가 많이 다르긴 하지만 제작장소와 제작시기는 부부총 금귀걸이와 거의 동일할 것으로 추측된다. 충분히 [[경주 부부총 금귀걸이]]와 같이 국보 또는 보물로 지정될 만한 작품이나 과거 이왕가박물관의 유물을 이관받았을 [[국립중앙박물관]]에 현재 이 유물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현 소재지는 미스터리한 상황이다. 정확히 언제 어디로 사라졌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왕가박물관의 창설 및 유물 관리에 일본인과 일제가 깊이 관여했던 만큼 현재는 [[일본]]에 유출되어 있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. 다만 현 [[국립중앙박물관]]의 관리체계 문제로 수장고에서 지금도 가끔가다 사라졌다던 유물들이 갑자기 튀어나오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기 때문에, 의외로 이왕가박물관으로부터 이관받은 당시 모습 그대로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에 먼지와 함께 쳐박혀있을 가능성도 있다.[[https://news.naver.com/main/read.nhn?mode=LSD&mid=sec&sid1=103&oid=032&aid=0002883386|경향신문 : 박물관 밑이 어둡다? 수장고에서 '발굴'한 국보들]] [[분류:없어진 문화재]] [[분류:신라의 금제유물]] [[분류:해외 소재 문화재]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